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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우유역사

  1. 01
    BC 8~6천 년

    소의 가축화 시기

  2. 02
    BC 4,000년 ~ 400년

    기원전 4,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소의 착유 광경이 그려진 이집트 나일강변 사원의 벽화로 알 수 있다. 기원전 3,50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 서남부), 유프라테스(Euphrates), 바빌론(Babylon) 근처의 계곡 근처 AL’Ubaid에서 발견된 벽화이다.

    1922년 대영 박물관과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박물관의 연구진에 의해 발견된 이 벽화는 외양간에 매어있는 소, 젖을 짜는 사람 모습, 젖을
    걸러내어 그릇에 받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3,000년 이전에 기록된 성경에도 가나안(Ganaan: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며 우유에 대해서 수없이
    언급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 앗시리아 시대에는 가축 떼와 병사를 그린 벽화가 발견되는 등으로 보아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는 우유와 치즈,
    버터를 고급 식품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기원전 400년경에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우유는 가장 완전한 식품”이라고 하였다.

  3. 03
    삼국시대, 통일신라 시대

    역사적 고증은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나라는 우유를 음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다만 안정된 농경문화에 안주한 까닭에 우유의 음용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4. 04
    고려, 조선시대

    권세가, 왕실에서 주로 음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보신, 보양 등으로 이용

  5. 05
    조선말

    1890년 12월 오부에 고노스케가 일본 영사관의 허가를 얻어 착유업을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한국 착유업의 효시가 됨.
    1910년 전후로 우유 판매광고가 시작됨

  6. 06
    일제시대

    한일 합병 당시 착유영업자 수는 61명에 달했으며 452두의 젖소가 있었으나 대부분 일본인이 독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1910년에 삼태 목장을 개설하여 유일하게 종사한 사람은 성봉선으로 추정됨.

    1930년대 전후 우유 판매 등의 경쟁이 치열하였고 당시 우유 소매가격은 1홉(180㎖)에 12~15전이며 대량 거래처에 8~10전으로
    할인 판매되는 등 유통제도가 확립되지 않았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세업자들이 1934년 4월 청량리 농유조합 결성

    1937년 서울우유 전신인 경성 우유 동업조합이 정동에 설립되면서 우유 처리장 다운 시설이 우리나라에 생겨났으며
    이 때 우유병은 1홉이었으며 우유병은 일본에서 수입했음.

    1941년 태평양 전쟁 후 군수식량으로 강제 반출되어 배급제가 실시되었으며, 1943년에 우유아(牛乳兒)등록된 사람만 경성우유 판매조합에서
    우유가 배급됨. 제1순위는 유아, 제2순위 중병 환자 신장염 결핵환자 등, 3순위는 기타 병자 임산부 허약자로 배급함.

  7. 07
    조선 이후

    1945년 9월 2일에 경성우유동업조합을 서울우유동업조합으로 개칭

    해방 이후 모리나가,메이지등 일본직영 목장이 38선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낙농 사정은 알 길이 없으며(해방된 경성조합은 일 3,600㎏에서 540㎏으로 격감)

    1948년에 “건강 우량아 선발대회”가 개최되는 등 서울우유 홍보와 우유 소비를 촉진하게 되었으며 우유 판매 특약점이 생김(25개소)

    6.25 동란때 서울우유동업조합은 11천여 두에 육박한 젖소가 237두로 격감하게 되며, 우유 생산이 중단되었으나
    10월 15일에 다시 원유를 처리함

    1960년도에는 우유 판매망은 특약점이 31개, 보조원 7명 등 38명의 판매원이 우유 판매

    1961년에 서울우유 동업조합이 해체되면서 농업협동조합법에 맞는 협동조합의 설립을 추진하여 1962년에 서울우유협동조합으로
    법인 등기하게 됨

    1950년대 말까지 우유 소비는 대부분 가정배달이었으며 1956년 제과점에 200개/일 공급하는 것을 계기로 대량거래처가 개척되고
    이때 오리온제과에서 최초로 우유를 이용한 캐러멜이 생산되기도 했음

    1957년경에 위생적인 우유통(20ℓ)로 표준화(이전은 미제 휘발유통 등을 이용)

    1959년에 화물차로 우유통을 운반 및 집유함(이전은 우마차로 운송)

    1960년도에 4.19혁명의 희생자를 돕기 위해 조합원과 직원,특약점들이 (21만 7,400환)을 모아 조선일보에 기탁

    1962년에 중랑교에 현대화된 유가 공장 설립

    1963년에 최초의 가당연유가 생산되고, 1963년 비락이 1966년 남양이 유아용 조제분유
    1969년 해태가 연유와 분유 생산으로 본격적인 유가공이 확산

* ‘우유이야기’의 컨텐츠는 J-milk에서 제공받아 서울우유의 홈페이지에서 서비스하는 것으로 번역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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